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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慰勞),consolation

서울의 봄, 실존인물들의 12.12 그후의 이야기(1) 이태신장군(정우성) - 장태완 수경사령관

by SmiteStitch 2023. 11. 28.

목차

    서울의 봄을 보고 난 후

    1979년 12월 12일 군부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픽션으로 치부하기에는 역사서에 가깝게 고증하려 노력했던 영화이므로 대부분의 줄거리는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하고 영화의 스포가 되는 사실들은 제외하고 이 영화에 나온 주인공들과 매칭이 되는 실제 인물들의 영화의 시대적 배경 이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장태완 - 이태신 장군(정우성)


    제7대 수도경비사령관을 맡은 장태완입니다. 극중에서는 정우성 배우가 연기하셨죠. 솔직히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비주얼에 비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비주얼이 너무 극강이라..ㅎㅎ)고 생각하고 지내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오롯이 정우성에 의한 정우성을 위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우성이형 연기인생 최고의 영화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멋진 연기를 보여주실지 모르니 2023년 현재까지로 국한하도록 하겠습니다.

     

    6.25 전쟁과 임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하여 11기로 임관하며 전쟁을 참여하여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육군종합학교출신 소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사출신의 장교가 아닌이상 총알받이로 취급당했다는 얘기들이 있죠.

     

    반란군진압 실패

    반란군의 헌법유린이후 일명 '서빙고'로 끌려가 45일간의 혹독한 조사를 받고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 후 반년이나 가택연금되어 지냈다고 합니다. 군사반란직후 바로 보직해임되고 후임으로 반란에 참가했던 전두환의 친구이자 9 사단장이었던 노태우가 수경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비극

    이러한 소식을 듣게된 가족들에게도 끔찍한 일들이 닥쳐왔습니다. 장태완 장군의 아버지는 충격과 분개로 술로만 끼니를 대신하며 지내다 1980년 4월 과음으로 인해 별세하셨습니다.

     

    당시 고생학생이었던 외동아들 장성호는 감시를 받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 상황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잘하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하였고 1982년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되고 1달 만에 칠곡군 왜관읍 근처에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자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이 죽은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슬퍼하며 전국을 유랑하고 다녔다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라면 반전인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전두환의 하나회와는 원수같은 사이였을 장태완은 전두환이 한국증권전산 사장에 임명하자 이를 수락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2012년 1월 17일에는 부인 이병호 여사가 자택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추정되었는데요 이날은 참 우연스럽게도 12.12 쿠데타에 가담했던 하나회출신 신윤희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장태완을 비난하는 책을 낸 날이었습니다.

     

    정계활동

    1994년에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선거에서 승리하고 이후 재선에도 성공하며 27대, 28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시기에 소속정당이자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를 맡았지만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분당으로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던 장태완은 당론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사망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하였고 2008년 폐암으로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후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로 별세하게 됩니다.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살펴보는것으로 어떤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제넘은 저의 개인적인 평가 따위는 감히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얘기해 온 것을 옮기자면 부하들에게 엄격했던 지휘관이었던 만큼 자신 본인에게도 엄격한 인물로 유명했다 합니다. 

     

    역사적 사실상 이미 패하여 비극을 맞게되는 인물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태신 장군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분명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지 이미 알고 있는 데다가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명연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럼 다음 인물로 다시 글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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