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慰勞),consolation

서울의 봄, 실존인물들 그후의 이야기(3) 공수혁 소장(정만식) -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 윤흥기준장, 김오랑소령 / 기타등등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SmiteStitch 2023. 12. 1. 06:39

서울의 봄을 보고 난 후

1979년 12월 12일 군부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픽션으로 치부하기에는 역사서에 가깝게 고증하려 노력했던 영화이므로 대부분의 줄거리는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하고 영화의 스포가 되는 사실들은 제외하고 이 영화에 나온 주인공들과 매칭이 되는 실제 인물들의 영화의 시대적 배경 이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 공수혁 소장(정만식)

1949년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육군 1연대 소대장으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참다운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을 받으며 5.16 군사정변 때에는 쿠데타 세력에 비협조하다 체포되어 영창에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반란군 진압실패

1979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을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함께 막아보려 했지만 정병주 사령관이 도움을 많이 주어 준장으로 진급했던 여단장 최세창과 박희도에게 배신을 당하여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게 되며 구속됩니다.

 

이때 영화에서는 지금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김오랑 소령의 씬이 나오는데요, 정병주 소장을 보호하려다 쿠데타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먹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김오랑 소령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장으로 강등 예편

1980년 1월 20일 현역부적합 처리되고 육군 소장으로 강등 예편(강제전역과 비슷합니다.)됩니다. 

 

자식 같았던 부하들의 배신 -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박희도


박희도 준장

도희철(최병모)

 

제1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 준장은 1978년 11월 3명의 무장공비가 1여단의 지역에서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간 것으로 파악된 사건 때문에 보직해임을 당할뻔합니다. 이것을 정병주가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이세호에게 무릎을 꿇어가며 빌어서 겨우 보직해임을 면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12.12사태 때 자신의 병력을 동원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는 배신으로 갚게 되죠. 역시 두발 달린 짐승은 거두어 키우는 게 아니더라는.. 이후 전두환 정권하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며 1985년 제26대 육군참모총장의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하지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후 전두환의 잔재를 제거하는 차원으로 보직해임 후 전역을 당하게 되죠.

 

최세창


최세창 준장

김창세(김성오)

 

제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정병주 소장을 체포하는 짓을 저지릅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있었던 사령부 본부 건물에는 사령부 지속의 무장병력이 없어서 쉽게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희도는 특전사령관으로 승진하게 되자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는 게 무서워서 제707 특수임무대대를 창설합니다. 이후 합동참모의장으로 승진하고 제6공화국시절에는 국방부장관을 지내기도 합니다.

 

장기오


장기오 준장

탁재오(한창현)

 

제5공수특전여단장 장기오 준장은 육사 12기로 가장 늦게 별을 달았는데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정병주 사령관이었으며 정병주장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죠. 하지만 역시나 쿠데타에 가담하며 정병주를 배신하였습니다.

 

자식 같았던 부하들의 충성

윤흥기준장 


윤흥기 준장

박기홍(정형석)

 

제9공수특전여단장인 윤흥기 준장은 갑종출신이기에 하나회와 아무런 연이 없어서 정병주 사령관을 배신하지 않고 반란군 진압에 가담하기 위해 육본을 향해 출동하게 됩니다. 9공수여단이 육본에 도착하여 수비를 했다면 역사는 크게 변화해왔겠지만 영화에서 사람들의 혈압을 솟게 했던 육본의 지휘관들에 의해 그 시도는 좌절되며 회군하게 됩니다. 

 

이후 윤흥기 준장은 12.12 사태 종류 후 곧바로 경질되어 예편은 피했지만 요직을 받지 못하는 커리어를 이어가다 전역하게 됩니다.

 

김오랑 소령

김오랑소령 - 오진호(정해인)

 

김오랑 소령은 영화 속에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되는 인물입니다. 정병주 사령관의 비서실장인 김오랑 소령은 홀로 사령관 곁을 지키며 반란군에 항전하다 그의 육사 선배이자 같은 군인아파트의 이웃이었던 형제와 같았던 박종규 중령의 총알에 사살당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훗날 김오랑 소령은 이 공적을 인정받아 중령으로 추서 됩니다.

 

김오랑 중령의 부인인 백영옥 여사는 남편의 죽음에 충격으로 쓰러지고 실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2.12 사태의 진실을 알리려 많은 활동을 하던 중 평소에 자주 참가했던 봉사활동을 하던 시설에서 추락사(?)를 했다고 합니다.

 

사망과 의혹

강제예편 후 꾸준히 12.12 사태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1988년 10월 16일 행방불명되고 이듬해 3월 4일 실종된 지 139일 만에 송추 인근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사체로 발견됩니다.

 

당시 당국에서는 자살한 것이라 발표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장태완 소장은 그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병주 소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가톨릭 교리에서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죄 중 하나이기도 하죠. 장태완 소장에게 했던 정병주 소장의 평소 대화가 '12.12 진상규명에 조력하고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남아야 하니 서로 몸조심하자'였다고 하니 의심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증거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사실상 진실을 밝혀내지는 못하게 됩니다. 

 

고인의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비석에는 아무 내용이 없이 이름만 적혀있다고 합니다. 유족들의 뜻일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후손들에 의하면 말버릇처럼 자신이 죽은 후에도 김오랑의 묘소에 참배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이 이끌어가지만 위에 언급한 인물들 또한 많은 관객들의 호흡을 앗아가는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그냥 영화로서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분하고 침통할 뿐이죠. 그럼 또 다른 인물들로 다음포스팅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